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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제물, 아우슈비츠, 광주 학살
운영자  2013-01-18 11:55:36, 조회 : 1,975, 추천 :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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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제물, 아우슈비츠, 광주 학살

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하고 비열한 인격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누군가를 악으로 만들어 적으로 삼은 다음, 그 악을 처단하고 박멸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요술처럼 선이 된다. 철학이란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하며 또한 강력한 마법의 도구인가?

, 공동체 전체의 최상위 1%를 차지하는 지배자가 나머지 99%를 둘로 나누어 그 둘 중 하나는 선으로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악으로 만들어 서로 싸우도록 이간질하여 전체를 지배하는 방법론이 곧 이원론이다.

이는 이른바 플라톤이 말한 훌륭한 거짓말이다. 그가 훌륭한 거짓말이라고 한 이 정치철학은 오랜 동안 진리로 통했고 또한 국가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법론이 되어 왔다.

바로 이것이 동서양을 통해 수천 년간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어릿광대들이 절대다수의 민중을 지배해 온 199, 그리고 이원론의 마술이다.

그들 소수의 피에로들을 위해 철학자들은 참다운 도덕을 극소수를 위한 통치의 수단으로 만드는 속임수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속임수를 진리로 포장하는 놀라운 말재주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들은 참다운 정의正義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를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폭력의 수단으로 감쪽같이 전락시킨다. 이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해야 할 국민의 군대가 최상위 1%의 어릿광대들을 위한 사병私兵이 되어 99%인 민중들을 억압하는 민중의 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속임수와 폭력의 지배 법칙 110099’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속임수와 폭력은 시간이 가면서 더 큰 속임수와 더 강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속임수로서의 도덕은 광기狂氣가 되어 광란狂亂을 불러일으키고, 폭력으로서의 정의는 드디어 학살虐殺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행동의 틀을 지배해 온 199의 야만의 법칙인 광기와 학살의 지배 법칙 199100’은 우리에게 그 무서운 모습을 드러낸다. 최상위 1%의 어릿광대가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99%의 민중에게 자기 대신 살해되어 줄 희생으로서의 제물을 필요로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 야만의 법칙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법칙들이 인류가 만든 사고와 행동의 틀을 지배하거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죄 없는 수백만의 여성들이 종교인과 권력자들에 의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치욕 속에서 고문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광장에서 불태워 죽임을 당한 마녀사냥을 알고 있다. 바로 그 야만의 법칙이 만든 것이다.

이 야만의 법칙은 수천만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수천만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납치하여 노예로 부려먹으며 평생을 짐승처럼 부려먹다가 지쳐서 죽게 만드는 일과 히틀러와 스탈린과 폴 포트의 대학살에도 작용하는 등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모든 대학살은 야비하고 무지한 거리의 범죄자나 깡패나 강도들이 우발적으로 한 일이 아니다. 이 대학살들은 그 시대의 가장 높은 교육과 교양과 지위와 직책을 갖춘 그 국가의 최고의 지식인들이 그 시대 최고의 철학의 원리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계획하고 실행한 국가적 사업들이다.

인류 역사상 그 속임수와 폭력, 그리고 광기와 학살은 아우슈비츠에서 절정을 이룬다. 600만의 유태인들은 아리안족의 인종 우월주의라는 뻔뻔스러운 속임수와 군대의 폭력이 일으킨 광기로 인한 광란 속에서 모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당하면서, 모든 재산을 약탈당하고, 집단 학살을 당한 것이다. 199가 만드는 행동의 틀은 마침내 극단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이 희생자 600만 명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다. 역사상 다른 모든 광기와 학살에 희생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한 명 한 명은 모두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독립된 우주로서 가치가 있는 고귀한 생명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이 계속 이어져 지금쯤 그 두 배나 세 배의 생명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또 앞으로 계속 그 세대들이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 독립된 고귀한 우주들이, 그 생명들이 완전히 말살되어 사라졌음을 말한다. 이것이 또한 인류에게 닥친 모든 광기와 학살에 희생당한 삶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공통된 결과이며, 동시에 절망과 슬픔이다.

이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대학살은 2차 대전 이후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중요한 과제를 안겨 주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처음으로 시대적 개념으로 제기한 리오타르는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가 기존의 지식 체계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심연.”이라고 했다. 데리다는 그의 󰡔그라마톨로지󰡕에서 서양 문명의 인종주의를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찾아내 맹렬하게 공격한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태인의 학살 담당관이었던 루돌프 아이히만이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라고 말해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이히만은 가정적이고 성실하고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것이다.

,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었던 진정한 문제는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우슈비츠 이후 누구나 언제든 상황이 주어지면 아이히만과 같은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 그것이다.

리오타르는 󰡔지식인의 종언󰡕에서 아우슈비츠의 범죄는 현실적이었지만, 그것이 이성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모든 교의는 무효화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당에 맞서고 있으며, 경제 공황은 자본주의의 근거를 부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파시즘의 이념이니, 공산주의의 이념이니, 자본주의의 이념이니 하는 모든 거대 이야기는 무효화되는 것이다.

이는 곧 속임수와 폭력의 지배 법칙 110099’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아주 작은 수없는 이야기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고 한다. 소수민족, 여성, 동성애자 등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소수민족은 곧 수백만 대학살의 대상이었고, 여성은 마녀 학살로 수백만이 죽었고, 동성애자 역시 학살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모두 광기와 학살의 지배 법칙 199100’에서 희생이 되는 제물인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아우슈비츠는 서양 철학 2,500년을 결산한 세계적인 철학 대국 독일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이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해결책도 리오타르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분명 인류에게 대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성과들이었다.

그러나 제물이 되어 희생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이 199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 담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철학자를 나는 아직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생각과 행동인가? 그러나 199만 보고, 99는 서로 분열하여 싸우면서 1만 보는 사이에 전체인 100이 만드는 균형과 조화를 통한 생명의 과정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거대 담론인지를 묻지도 않은 채 거대 담론을 비난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결국 현대의 철학자들은 인간 개인과 국가와 문명에서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거대한 생명의 과정을 통찰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할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 아우슈비츠의 문제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시작점이 종결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19805, 일단의 대한민국 정규군 최정예 부대 군인들이 환한 대낮의 대한민국 대도시 중심가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진압봉과 소총 개머리판과 총검으로 살상하는 과잉 진압과 더불어 일어난 걷잡을 수 없게 된 혼란 속에서 총을 쏴 많은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 참혹한 현장에서 이 광기와 학살의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모습을 보았다.

, 이 속임수와 폭력, 나아가 광기와 학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세계적인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의 연구실이나 철학 강의실 또는 고명한 수도자가 도를 닦는 산속의 수도장이 아니라, 19805 무자비한 학살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해 인간다운 삶을 추구했던 광주 시민 80만이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하나가 되어 움직였던 바로 그 행동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19805, 속임수와 폭력의 지배 법칙과 광기와 학살의 지배 법칙이 난폭하게 지배하던 바로 그 현장에서 광주 시민들은 스스로 차별 없는 하나가 되어 속임수를 참다운 도덕으로, 폭력을 참다운 정의로, 선전선동을 참다운 중용으로 바꾸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다스림을 받으며 행동했다.

19805, 대한민국 광주 시민의 행동은 지난 오랜 세월 인류를 지배해 온 199의 행동을 틀을 완전히 극복하는 전혀 새로운 행동의 틀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광주 시민 80만의 행동은 지난 3천 년간 동서양의 그 어떤 철학자의 그 어떤 철학 이론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광주 시민은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그 어떤 철학자의 상상력으로도 포착할 수 없었고, 아무리 탁월한 철학자들이라도 단 한 줄의 글로도, 단 한마디의 말로도 입에 올린 바 없었던 전혀 새로운 행동의 틀을 보여 준 것이다. 이는 기존의 동서양 철학 이론 전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철학 이론을 현실에서 보여 준 것이다. 나는 바로 이것이 한겨레의 한사상韓思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80만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세계인에게 보여 준 그 행동이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한사상의 이론 체계이며 과정적 민주주의였음을 이 책의 마지막인 5부 한사상이 살아 있는 역사와 현실에서 증명證明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빠짐없이 꼼꼼히 읽고 이해했을 때 비로소 80만 광주 시민이 행동으로 보여 준 한사상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Weveron
This is what we need - an insight to make evyerone think 2013-03-20
19: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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